바울은 2차 전도 여행 중 데살로니가에서 격렬한 저항을 받았습니다. 유대인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때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이 믿었으나 불량한 자들이 그를 시기하여 소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일이 이러하여 바울은 오래 못 버티고 베뢰아로 쫓겼습니다. 그들은 거기까지 쫓아와 행패를 부렸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설립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3주밖에 머무르지 못했는데, 게다가 저항도 심하여 혹여 잘못될까 애타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 소식을 접한 바울은 입에서 찬송이 절로 흘러나오도록 감격스러웠습니다. 믿음에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 그들의 소문이 들려왔으니 말입니다. 이는 사람이 씨를 심되, 자라나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마게도냐에 이르러 연거푸 받은 고난과 능욕은 사도들의 육신을 괴롭혔으나, 교회에서 들려온 소식이 그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머문 기간이 짧았던 것인지 지식 면에서 부족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 죽은 성도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의혹을 가졌습니다. 혹시 재림을 못 보고 죽으면 믿음이 헛것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나 싶습니다.
바울은 재림에 대해 교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육신이 죽더라도 영이 계속 살아있음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로 난 우리의 영은 죽지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죽어 없어지는 것은 육신입니다. 영은 항상 존재하여 선한 일을 행한 자는 부활하여 생명을, 악한 일을 행한 자는 부활하여 심판을 받습니다.
부활의 시기는 바울이 언급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영생할 육체로 부활하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의 영이 현재 땅에 묻혀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각 사람이 죽은 때 즉각적으로 부활한다고 여기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변화산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즉각적으로 옮겨집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영이 덜 고통받도록 미리 옮기시는 일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림에 관하여 우리는 때와 시기를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언제 어느 때에 오실지 안다고 한다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그날을 비밀에 부치신 이유는 우리로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때가 멀다는 사실을 알면 사람은 나태해집니다. 그래서 알려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깨어서 악을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언제 주님이 오셔도 맞이하도록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더럽고 추한 죄를 회개하여 영과 혼과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깨끗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아도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아니면 바깥 어둠에 밀려납니다. 회개해야만 거룩한 신부로 혼인 잔치에 참여합니다.
- 강병도 편저, 「호크마 주석」, 기독지혜사
- 하용조 편찬, 「비전성경사전」, 두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