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호르 주석

마태복음 21

이원범 2024. 3. 2. 18:03

21:1~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사건을 다룬 기사다. 마태는 공관복음에서 유일하게 어미 나귀를 언급하였다. 이는 주께서 타신 나귀가 아직 젖도 떼지 않은 어린 나귀며, 아무도 태워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21:4, 5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실뿐더러 선지자의 예언을 빠짐없이 성취하신다. 갈기를 휘날리며 힘차게 달리는 백마가 아닌 작고 연약한 새끼 나귀에 몸을 의탁하심은 종의 형상으로 섬기러 오신 주님의 목적과 잘 어우러진다. 겸손하신 주님은 잃어버린 자들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하는 진정한 평화의 왕이시다.

21:7 he sat on them. 여기서 복수형으로 나오는 '그것들'은 제자들이 나귀 위에 덮은 겉옷을 가리킬 것이다. 나귀 두 마리를 번갈아 타셨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21:9 Hosanna. 헬라어 원어는 '구원하소서'를 의미하는 아람어 '호샤나'에서 유래한다. 환영 인파의 떠들썩한 외침과 소란스러움은 메시아를 대망하는 유대 자손의 심정을 대변한다. 그런데 그들이 바란 구원은 다분히 정치적인 측면의 것이었다.

21:11 the prophet Jesus. 대중의 생각은 하나가 아니며 한편으로 선지자로 보기도 하였다(16:14). 만약 '오실 그 선지자'라고 했다면 거의 맞았을 텐데(요 6:14),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이라는 수식을 사용했다. 그리스도의 왕적 신분을 깨닫는 은혜가 그들에게 미치지 않았다.

21:12 특별한 행사가 열리는 곳에 기념품 가게와 푸드 트럭이 몰려드는 것처럼 순례객을 상대로 돈을 벌러 온 상인들로 보인다. 그들이 성전 구역에 들어와 장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정액 수수료를 담보로 지도급 제사장의 승인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께서 화를 발하신 대상은 장사꾼들이지만, 성전을 더럽힌 죄의 책임은 자기 본분을 망각한 제사장들에게 있다(출 29:43, 44).

21:13 a house of prayer. 제사장들이 망각하고 있던 성전의 본질이 이것이다. 한편으로 성전은 죄를 속하기 위한 장소로, 죄를 자백하는 기도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 기도자의 번제와 희생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하늘과 땅의 복이 임할 것이다(사 56:7). 바깥뜰의 시장터 같은 소음은 이러한 성전의 기능을 방해하였다. den of robbers. 렘 7:11에서 인용하신 표현이다. 위협만 하지 않았을 뿐, 그들은 성전 제사장으로서의 이점을 활용해 서민의 돈을 갈취하였다. 종교 지도자들은 직업의 특성상 하나님을 대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사소한 잘못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에 큰 누를 끼칠 수 있다. 이미 그들은 원수나 다름없을 정도로 진노를 촉발하는 자들이었다.

21:16 the children crying out. 성전 관계자들은 그 소리에 기가 막혀 짜증이 솟구치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이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다. 아이들은 꽉 막힌 그들과 다르게 보고 들은 그대로 순수하게 찬양할 따름이었다. 편향된 관점을 가지거나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은 주로 어른들의 성향이다. 아이들의 찬양을 정당화하심은 자신의 신적 정체성을 숨김없이 내보이는 행동이다.

21:19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에게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하리라 선고하신다. 이는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열중하는 그 무리와 오늘날의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다. 열매는 자신의 본분을 정확히 알고 순종해야 맺으며 늘 보이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외형적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 열매도 많이 있다(6:4, 6).

21:20~22 제자들의 관심은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는 능력 그 자체에 있는 듯 보인다. 주님께서 언급하신 바로 미루어, 그들은 이미 능력의 소유자로서 믿음을 통해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있다. 다만 사적으로 무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믿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요 8:47). 따라서 내의 주관적인 뜻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신 일이 이루어짐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21:23 By what authority. 보냄 받은 자의 권위는 보내는 이에게서 주어진다(요 17:7). 하나님의 사자에게 출신이나 배경, 직분 같은 이력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옛 선지자들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임명되어(렘 1:5; 암 7:12) 하나님께서 친히 들려주시거나 입에 넣어주신 메시지를 선포했다. 그러므로 권위에 대한 그들의 물음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완고한 고집과 불신이 드러나는 표현이다.

21:31 The first. 그들도 본능적으로 깨닫는 바가 있었다(요 11:49~52). 비록 영적으로 무지하였지만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알고 있었다. 아들의 도리는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다. 단지 들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약 1:22). the tax collectors and the prostitutes. 유대 사회에서 가장 불결하고 못난 자로 여겨졌지만, 역설적으로 대제사장들 및 장로들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기가 죄인임을 알았던 그들은 세례 요한의 질책을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종을 자처하며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맞이하지 않았다.

21:33~46 지도급 인물들을 겨냥한 이 비유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실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결정적인 부분은 아들에 대한 그들의 적의며 그를 붙잡아 죽인 사건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예견하는 대목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시듯, 유대 자손에게 속했던 특권을 빼앗아 이방인에게 주실 것을 예언한다.

21:34 his servants.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가리킨다.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가 되시며 맡기신 자에게서 응당 열매를 기대하신다.

21:35 beat one, killed another, and stoned another. 선지자들에 대한 적대 행위는 성경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왕상 19:2, 22:27; 대하 24:21, 36:15, 16; 느 9:26; 렘 20:2, 26:8, 21~23).

21:42, 44 여기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44절의 '이 돌')은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지만(시 118:22), 그것을 버린 자들에게 걸림돌 및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지닌 재앙으로 임하게 될 것이다(사 8:14; 단 2:34,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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