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자세한 정황은 모르지만 아마도 국가 질서에 반하는 투쟁 활동을 벌이다 처벌된 것으로 보인다.
13:2~5 화를 입은 것이 당연히 죄가 많아서라는 관념에 반박하신다. 또한 죄가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적용될 문제임을 못 박으신다. 사람 간에 죄의 경중을 따지는 일은 별로 유익하지 않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3:3 unless you repent. 망하지 않으려면 유일한 해결책인 회개하는 것밖에 없다. 예수님을 따랐던 무리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개가 따라야 한다. 믿음과 회개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믿음을 가지면 회개할 수밖에 없고 회개하면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회개에 대한 신학적 해설 참조.
13:6~9 여기서 '무화과나무'는 사람을 가리키며 '열매'는 회개로 맺은 의, 곧 정결함이다. 이 비유는 주인이신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직접적으로 밝혀주며 또한 기다림에 한계가 있어서 때를 넘겨버리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됨을 시사한다.
13:11 a disabling spirit . . . She was bent over. 귀신의 물리적 억압에 의해 허리가 구부러진 것으로 보인다. 예수께서 안수하시자, 귀신은 저항할 틈도 없이 떠나갔다.
13:13 glorified God. 자신에게 이루어진 치유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음을 직감하였다. 이는 성령님이 여자의 마음에 그런 확신을 넣어주신 덕분이다.
13:14 선악을 막론하고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회당장의 주장은 외식하는 자로 불리던 바리새인의 잘못된 규율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해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12:1).
13:15 hypocrites.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을 자신에게 예외로 치부하니 대단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진면목은 부도덕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길 좋아하며, 이중적인 성격이다.
13:16 daughter of Abraham. 유대인들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이라는 사실에 무척 자부심을 느끼는 편이었다(마 3:9). 이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증거로 삼아졌다. 그러니 이 여인의 가치는 소나 나귀 같은 말할 줄 모르는 가축에 비할 바가 아니다. loosed from this bond. 소나 나귀를 풀어주는 것과 여자를 악령에게서 풀어주는 것이 매치되고 있다. 둘의 차이점은 전자가 주인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지속적인 해를 입히고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13:18~21 작은 크기에서 놀라울 만치 성장하고 효력을 내는 겨자씨와 누룩의 심상을 이용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을 설명하신다. 초기에는 왔는지 안 왔는지 구별이 안 가지만, 후에는 전 세계로 수많은 사람에게 퍼져나간다.
13:23 few. 여러 동네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시던 중 믿고 회개하는 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구원은 혈통적 유대인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요 1:13; 롬 2:28).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자부하며 회개하지 않으면, 의인을 위해 예비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13:24 Strive. 하나님을 믿으며 유대인이니 당연히 구원에 합당한 자라고 여기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가만히 앉아서 구원에 참여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진지하게 앞을 보고 나아가라는 의미다(마 11:12; 행 20:24; 딤후 4:7). narrow door. 이를테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옭아매고 살아감을 의미한다. 천국은 맑고 빛나고 거룩한 곳이니 그곳에 들어가려면 의의 기준인 말씀으로 행실을 가다듬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죄로 더럽혀진 옷을 빨아 거룩해진 모습으로 천국을 향해 나아가자(계 7:14, 22:14).
13:25 shut the door. 구원의 기회가 무한정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택하신 백성이 아니다. 그들은 시일이 더 연장되더라도 회개할 가망이 없는 자들이다. I do not know where you come from. 버려진 자들에 대한 두렵고 엄중한 말씀이다. 주님을 무시하고 거역하는 시점에서 심판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요 3:18, 10:26).
13:26, 27 주님과 안면이 있고 전에 가르침을 받았던 사실로 사면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죄는 회개해서 용서받아야 할 문제이지 친분을 이용해 덮고 지나갈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설령 예수님의 친족이라 할지라도 회개 없는 구원은 전혀 있을 수 없다.
13:28 weeping and gnashing. 천국 바깥으로 쫓겨난 자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권리를 한순간에 박탈당함으로 깊은 후회와 분노를 겪게 된다.
13:29 east . . . south. 언약 백성이라 자부하며 스스로 높아진 이스라엘은(마 3:9) 그동안 경시하고 부정하게 보았던 이방인보다 못한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유대인에게서 얼굴을 돌리시며 이방 나라로부터 새 언약에 참여할 자를 찾고 계신다.
13:31 Get away from here. 완악하고 회개하기 싫어하는 입장에서 주님의 말씀이 심히 거슬리고 화가 났을 것이다. 헤롯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으나, 살의만으로는 오히려 바리새인들이 더 위협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13:32 that fox. 여우가 영리하면서도 교활한 이미지를 가진 것을 차용한 것이다.
13:34 언약 백성의 성읍인 예루살렘을 향하여 탄식하고 계신다.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신실하게 의무를 행하시는 하나님과 대비되어 더욱 악독하게 그려진다. 이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되었다.
13:35 your house. 성전 또는 성읍을 가리켜 말씀하시는 것일 수 있다. you will not see me until. 주를 부인하고 대적을 일삼은 대가는 승리의 입성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그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시 118:26).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는 예루살렘은 더 이상 신앙의 중심지로 불릴 수 없다. 그저 옛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찾는 유적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