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

영적 전쟁

이원범 2020. 2. 18. 14:16

우리는 마귀가 권좌에 앉은 세상에 살고 있다. 악의 영들, 귀신에게 억눌리며 고통당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성별된 주의 자녀들은 더러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있다. 이것은 전장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전투다. 다만 직접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 전쟁은 '영적 전쟁'이라 불린다.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엡 6:12). 다시 말해 군대나 무력을 기반으로 한 싸움이 아니다. 성도가 싸워야 할 적은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주름잡은 어둠의 권세, 즉 마귀와 악의 영들이다. 이들은 영적 존재이며, 뛰어난 이성을 가지고 있고, 인간보다 강하고 교묘하다. 추가적인 설명은 마귀와 타락한 천사들 편을 참고.

어둠에 속하면 수탈을 당하며, 빛으로 나오면 투쟁이 기다린다. 이 싸움은 원치 않는다고 빠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갈 뿐 피할 수 없다. 성도라면 필연적으로 이 전쟁에 마주하게 된다. 성도가 된 시점부터 벌써 전장에 발을 들인 것이다. 바울은 군인이 전신 무장한 것에 착안해 주의 백성도 이처럼 무장할 것을 강조하였다(엡 6:10~12).

그가 말한 전신 갑주는 몸 전체에 착용하는 무장으로 투구, 상의, 하의, 벨트, 부츠, 방패, 검 등을 가리킨다. 이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영적 전쟁은 상상이 아닌 실제이며, 무기는 물론 방어구가 승패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무기나 방어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정결하고 주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입혀 주시는 신령한 무구이다.

대치 구도

1) 생명의 성령의 법 VS 죄와 사망의 법

죄의 본성과 그것에 반하는 이성 및 양심이 서로 대치하는 구도이다. 중생하지 않은 사람은 대치 구도를 이루지 않는데, 그 이유는 한쪽 힘에 너무 무게가 실려 대치가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강 대 강 힘의 전투가 벌어지는 때는 우리 안에 성령께서 들어오시고 악의 영을 거스름으로 시작된다. 성령께서 더러운 것과 죄에 물든 생각을 강하게 대적하시면 내면에 극심한 갈등과 번민이 찾아온다. 강하게 역사하실수록 죄를 미워하고 도려낸다.

반대로 죄의 세력이 더 강하면 성령의 뜻을 무시하고 죄를 짓고야 만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두 진영에 대해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이라 묘사했다.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 편에 서서 성령의 뜻대로 살아가길 원하지만, 악의 세력은 그렇게 하도록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미 몸 안에 들어와 있어서 어떻게든 정신을 장악하여 악한 일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2) 거룩한 천사 VS 타락한 천사

이 세상에 들어와 있는 악의 영들은 상상 이상으로 수가 많다. 그에 비하면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주 미미할 따름이다. 마귀와 그의 무리는 하늘 상층부에 분포하며 두꺼운 벽처럼 지구를 둘러싸고 있다. 성경은 그것을 일러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 표현한다(엡 2:2). 그들은 거대 조직이며 왕국이다. 계급주의 사회를 떠올리면 틀리지 않다. 몸에서 역사하는 영은 하급 영에 불과하며 윗 세력이 하명하면 거기에 복종하여 일을 수행한다. 조직적이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름 그대로 광범위한 지역에 권력을 행사한다.

3) 진리 VS 거짓

거짓과 속임수는 거의 같으며 사탄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사탄이 부릴 수 있는 최대의 장기이다. 왜 그는 유독 거짓말을 하며 속이는 일을 행할까? 아무래도 그의 목적이 사악한 것과 연관이 있다. 또한 진리가 가져다줄 하늘의 빛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행동이다. 진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들을 밝은 빛으로 인도하며 생명을 얻게 한다. 사탄은 그것을 너무나 미워하기 때문에, 걸려 넘어지게 만들 함정을 곳곳에 만들어 놓고 진리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훼방한다. 특히 진품과 거의 흡사한 모조품처럼 진리에서 살짝 벗어난 신학이 사람을 어그러진 길로 인도한다. 그러한 시도는 바울의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일이다.

4) 그리스도인들 VS 세상 사람들

신앙의 유무로 편을 가르는 것은 다분히 이분법적이고 도발적인 발상이다. 이런 견해가 탐탁지 않을 것은 알지만 진실에 입각해서 논지를 말하려고 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고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을 행할 때, 사탄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모든 어둠의 원흉은 사탄 마귀이며, 그들의 개입이 세상 어디에나 들어가 있음은 이미 아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통해 원하신 뜻을 이루고자 하신 것처럼, 사탄도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의 마음속에 역사하며 그가 가진 능력을 이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운 친족이나 친구라도 신앙적 부분에서 대립이 일어난다(마 10:34~36). 집단적 차원의 대립은 정책을 마련하거나 비신앙적인 문화를 수용하려 할 때 주로 발생한다.

이기기 위한 수단

피할 수 없는 이 싸움에서 우리가 취할 자세는 무조건 공격이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고 했다. 이미 마귀의 공세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상태다. 그러니 다른 생각을 할 것이 없다. 최고 사령관이신 주님은 그리스도인이 능히 이길 수단을 완성해 놓으셨고 대적을 완전히 무찌르는 능력도 갖추고 계신다. 그 수단은 복음이며, 죄악을 애통히 여기고 용서를 갈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피,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다.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으면 우리 몸에서 지배권을 행사하는 마귀의 세력이 힘을 잃고 빠져나간다. 몸에서 더러운 것이 떠나고, 죄의 결박과 저주에서 해방되며, 성령 안에서 자유롭게 된다. 이 놀라운 변화는 최고의 기쁨이며 하늘에서도 잔치가 벌어질 기쁜 일이다. 복음은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결과를 맺는다. 과연 복음은 기쁨의 소리인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죄를 회개하는 것은 악의 영들에게 선제공격을 넣는 것과 같다. 회개는 죄를 애통히 여기며, 지은 죄를 자백하는 행위이다. 여기에 금식이나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는 행위 등도 같은 의미로 행해진다(단 9:3).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삶은 자신을 돌아보고 지은 죄를 회개하며 정결케 되기에 힘쓰는 것이다. 그래서 많이 회개하는 사람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가족도 회개하도록 도와야 한다. 가족은 친밀한 관계에 있으며 영적으로 한 몸을 이룬 지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안전해도 누군가가 영에게 해를 입는다면 결코 괜찮은 상황이 아닐 것이다.

원수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통해 간접적인 공격을 시도하기도 하는 만큼, 전쟁은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홀로 싸움에 임하는 경우는 흔한 경우며 고통의 무게가 상당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역시 해답은 회개밖에 없다. 내 죄와 더불어 가족들이 지은 죄까지 주 앞에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아야 조금씩 승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

영적 전쟁은 영토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역사상의 숱한 전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는 자의 싸움이 영적 세계에서도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 흙으로 지어졌다는 사실도 이런 맥락에서 참 의미심장하다. 악한 영들은 무장을 갖추고 견고하게 진영을 수비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몸 안에서 말이다. 그래서 그들을 쫓아내려면 압도적인 힘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대장으로 모시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의 부족한 힘을 주님께서 채워주신다. 따라서 우리의 할 일은 주님의 말씀을 굳게 신뢰하고 명령하신 바 회개하는 것이라 정리할 수 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 마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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