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

갈릴리의 풍경

이원범 2020. 2. 18. 16:49

갈릴리는 복음서의 주배경으로 삼을 수 있는 장소로, 이스라엘 북부 지역을 가리킨다. 이곳은 초기 스불론, 잇사갈, 납달리 지파의 땅이었으나 외세의 침략을 두루 겪으며 주권을 빼앗긴 영토였다. 그러다가 기원전 63년 폼페이 장군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로마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다. 그런 연유로 갈릴리는 타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유대와는 다른 풍경을 자아냈다. 당연하게도 유대 주민들은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고 이방인처럼 부정하다 여겼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성장하시고 공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신 곳이 이곳이다. 숲이 우거진 산골마을 나사렛에서 예수님은 자라나셨고, 광야 시험 이후 갈릴리 해변 가버나움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갈릴리 바다 풍경
갈릴리 바다 주변

갈릴리 바다는 갈릴리 지역의 호수로 이스라엘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며 성경에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긴네롯 바다'(수 12:3), '게네사렛 호수'(눅 5:1), '디베랴 바다'(요 6:1; 21:1) 그리고 그냥 '바다'나 '호수'라고도 불렀다. 당시 갈릴리의 지역경제는 어업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것으로 보이며 호수 연안의 기름진 옥토에서 올리브, 무화과, 포도, 석류 등 갖가지 작물들이 생산됐다. 수제자 베드로와 요한, 안드레, 야고보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곳의 어부로 생활하고 있었다.

1세기경의 배 모형

이 어선은 1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배의 잔해물을 가지고 실제에 가깝게 재현해 놓은 모형이다. 원본은 키부츠 기노사르에 있는 이갈 알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이 배의 크기는 길이 8.27m, 폭 2.3m, 높이는 1.3m 정도이다. 사각형 돛이 하나 달려있으며 두 개의 노를 이용하여 조종하였을 것이다.

폭풍이 불 때의 모습

평소 잔잔하게만 보이는 이 호수는 강한 파도를 동반한 폭풍이 일기도 하는데, 원인은 갈릴리 바다와 골란 고원 사이의 급격한 표고차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북쪽의 차가운 바람이 따뜻하게 데워진 수면 위의 공기와 부딪쳐 갑작스러운 폭풍을 야기하는 것이다. 때로 2m가 훨씬 넘는 파도가 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이곳의 물은 헬몬산에서 발원하며 갈릴리 바다를 채우고 더 남쪽으로 흘러서 요단강을 이룬다. 이스라엘 국토에 물을 공급하는 주된 수원이다.

가버나움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를 둘러싼 어촌마을 중 하나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가옥들은 작았고 불규칙한 안뜰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고 한다. 주로 자연석 현무암으로 벽을 세우고 약한 지붕을 얹었다.

벳새다

벳새다는 가버나움의 인근 마을로 갈릴리 바다의 북쪽에 위치한다. 이름이 '어부의 집'이란 의미여서 이곳도 역시 어촌임을 알 수 있다. 베드로와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기도 하며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곳이다.

막달라

막달라는 '망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주 독특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마치 그랜드 캐니언을 연상시킬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이곳은 다메섹과 애굽이 이어지는 해변 길에 세워진 마을이며 잘 발달한 평지가 돋보인다.

나사렛
나사렛

나사렛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북쪽,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안에 위치한 마을이다. 1세기경에는 인구가 200명 미만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나사렛은 예수께서 소년 시절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아버지 요셉에게 전수받은 기술로 목수의 일을 하셨을 거로 추측하고 있다. 참고로 1세기 팔레스타인의 목수는 나무도 다루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석수처럼 돌을 깎거나 다듬는 일을 주로 했다고 전해진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고향을 두 번 방문하신 적이 있었는데 두 번 모두 배척을 당하셨다. 심지어 예수님을 절벽 아래로 떠밀어 죽이려는 자들도 있었다(눅 4:19). 무지하고 눈 어두운 백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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