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

앗수르 제국

이원범 2020. 2. 18. 16:54

앗수르 제국은 기원전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한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놓인 땅을 의미하며 이란, 쿠웨이트, 시리아, 터키뿐만 아니라 현재 이라크의 대부분의 지역에 해당한다. 이 지역은 물이 풍부하여 관개 시설에 조금만 투자해도 농업으로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었다. 시작은 몇 도시국가였지만 강력한 통치자들을 거치면서 고대 근동을 지배하는 세계 최초의 거대 제국으로 후대에까지 드높은 위상과 찬란했던 문명이 전해지고 있다.

앗수르가 강성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기술적 진보였다. 아시리아인은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처음으로 철제 무기를 사용했다. 이것은 그 아래 단계인 청동 무기보다 훨씬 우월한 것이었다. 앞선 기술로 인해, 그들은 무기와 보호구 등을 저렴하게 보급하여 더 많은 병사들을 무장시킬 수 있었다. 또한 공성전용 장비까지 갖추었다.

아시리아인들은 이러한 기술적 진보로 인해 적의 도시를 하나씩 점령해 나갔고 이는 제국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제국은 오백 년 이상 메소포타미아에서 권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기원전 600년대에 영토가 너무 커져서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비로소 무너졌다.

열왕기하에 이름이 언급된 앗수르의 왕들.

  • 앗수르 왕 불(디글랏 빌레셀 3세)
  •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사르곤 2세)
  • 앗수르 왕 산헤립(센나케립)
  • 에살핫돈(에사르하돈)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앗수르의 행적은 악의 무리나 다름없이 파괴적이고 잔혹하기 그지없다. 끝없는 탐욕으로 전쟁을 벌이며 힘없는 나라와 민족을 짓밟고 유린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큰 악을 행하는 일이지만, 큰 악인이라 해서 즉각적으로 심판이 임하는 것은 아니다. 악인도 악한 날을 위해 예비된 하나님의 도구이기에, 세상은 그들의 파괴적 본성과 강대한 힘에 두려워 떨었다(사 10:5). 그리고 언약을 무시하며 날마다 죄만 짓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게 만들었다.

때가 이르러 앗수르의 죄악이 하늘을 가득 채웠고 심판의 날이 돌아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요나를 불러 어서 저 큰 도시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외쳐라 말씀하셨다(요 1:2). 하지만 요나는 적어도 그 명령에는 순종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앗수르의 악행은 민족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깊은 원한을 품게 했다. 그렇지만 요나는 결국 하나님께 굴복하여 니느웨로 가서 심판의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회개하며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그들의 죄 때문이다. 미워하시는 대상이 사람과 육축이 아닌, 그들이 범한 죄라는 사실이다. 니느웨 사람들의 금식과 통회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임박한 재앙이 당대에 내리지 않게 하였다.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 못한 이유는 회개가 지속적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회개는 죄를 탕감받는 행위로써, 죄가 남아 있는 한 지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죄를 그치는 일은 없으니 속죄도 그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은 죽음을 모면하려 그 순간에만 통회하였고 나중엔 변심이 일어난 것 같다.

약 100년이 지난 뒤, 선지자 나훔을 통해 재차 멸망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훗날 니느웨는 폐허로 변해 고고학자들에게 발견되었다. 거대한 궁전의 옛 흔적과 앗수르의 이야기를 담은 수천 개의 묘비가 남아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니느웨 시는 약 30m 높이의 성벽을 가지고 있으며, 그 벽이 아주 넓어서 네 대의 병거가 나란히 지나갈 정도였다. 성벽에는 수백 개의 탑이 있었으며, 바깥 둘레에 폭 42m 깊이 18m의 해자가 파져 있었다. 도시에는 광장과 공원, 동물원, 식물원 등 편의와 휴식을 제공하는 다양한 문화 공간도 마련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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