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

마음의 병

이원범 2021. 4. 23. 17:18

사람은 살면서 건강하고 장수를 누리기 원한다. 설령 욕심이 없더라도 이는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병원에 오가는 환자들, 가득 들어찬 병상을 보면 이것이 쉽게 이룰 소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병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너무나 소중한 것을 앗아간다. 병이 있는 한 자유롭지 못하고 고통과 괴로움이 따른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다. 육신의 병 못지않게 자유를 옭아매며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 또 눈에 보이는 상처와 다르게 치료의 실마리를 못 찾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발병해도 딱히 방법이 없고 치료를 할 수 없어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치료받더라도 호전이 잘 안되며 경제적 비용에 비해 얻어지는 것이 별로 없다. 당사자나 가족들에게 있어 힘겨운 짐이자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아닐 수 없다.

왜곡된 성격

흔히 마음의 병이라고 하면 우울증 강박증 불안장애 대인기피증 환각·환청 등 정신질환을 연상하기 쉬운데, 이것들에 더해 정상적이지 않은 성격·성향 등도 병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몇몇 성격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왜곡된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내성적인 성격의 경우 처음부터 그런 성격을 가진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성격은 본래 영혼이 가진 특색에 의해 결정되는데, 천국에 있을 땐 모두가 밝고 활달한 성격을 가진다. 차이는 지상에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어머니 태중에서 아기는 더러운 죄를 덮어쓰고 그때부터 여러 상처의 영향을 입는다. 변질이 일어나고 본래의 것과 다른 성격과 성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관련된 악한 영은 다음과 같다.

  1. 내성적이게 하는 영
  2. 기죽게 하는 영
  3. 상처받게 하는 영
  4. 열등감 있게 하는 영
  5.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영
  6. 담대하지 못하게 하는 영
  7. 화통하지 못하게 하는 영
  8. 기뻐하지 못하게 하는 영
  9. 슬퍼하게 하는 영

내성적인 것 외에 어느 감정이 지나치게 강하고 공격적인 성향도 악한 영에 의해 변질된 성품이다. 깊이 들어가면, 성품마다 관여하는 영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은 태어난 환경이 무척 중요한데, 가정환경 특히 부모의 성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처음 물려받은 영들이 악질적이고 가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고 자라면 부정적인 성격을, 정결하고 성품이 온화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좋은 성품을 지니게 된다.

상처

우리가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상처일 것이다. 상처는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한다. 왜냐하면 한으로나 앙금으로 마음속 어딘가에 맺혀있기 때문이다. 상처들은 전부 아프다. 다만 작은 상처는 잊고 혹은 참아낸다. 인생의 연륜이라는 것은 아마도 수많은 상처로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무수히 상처를 입고 묵묵히 감당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상처가 필연적이라면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우리로 믿음을 더하게 하시기 위함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행한 대로 갚으시는 그분의 성품을 고려하면 원인은 누구의 죄에 있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행한 자에게 복을 베푸시고, 남을 해하거나 속이면 동일하게 해를 받게 하신다. 내게 억울한 일이 생겼으면 자신의 가문에서 선조가 남을 억울하게 만들었던 탓이다. 하나님은 정확히 상벌을 갚으시는 분으로, 잘못을 행한 자와 그의 후손에게 반드시 상응하는 벌을 내리신다. 그것은 억울한 일, 상처받는 일이며 내가 감당해야 할 수 있다.

신변의 위협. 구타, 폭언, 협박 등 신체의 상해 혹은 살해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를 말한다. 죄악이 관영한 곳에서는 언제나 약자에게 이 같은 불의가 벌어지기 마련인데, 심한 경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상태가 되기도 한다. 산모에게 태교는 무척 중요한데 만약 부부싸움이나 어떤 변고가 생기면 아기의 성격 형성에 심한 악영향을 준다.

배신당함과 거절. 살다 보면 믿었던 사람에게서 뼈아픈 배신을 당할 수 있다. 그 사람이 가까운 친족이거나 사랑하고 의지했던 사이라면 더욱 충격이 크다. 비슷한 것으로 버림과 외면을 들 수 있다. 예로 어머니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아기에 대해 지우고 싶은 감정을 가지거나 낳아서 키우더라도 제대로 보살피지 않을 때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된다.

잃어버림. 사랑하는 연인 혹은 가족의 죽음은 남은 사람에게 깊은 절망, 슬픔, 원통함을 느끼게 한다. 감당하기 힘든 상처이며 커다란 후유증을 남긴다. 추가로 사업 실패, 도난·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 이혼·이별, 교우 관계의 단절, 사고로 얻은 장애, 건강 약화 등도 있다. 상실이 주는 스트레스는 보기보다 커서 우울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다.

인권 유린. 부패하고 계급화된 사회일수록 인권에 대한 존중을 거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고 인격 간에는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처를 입는다. 부당한 대우나 무시, 괴롭힘, 강간 같은 성적 유린은 동등한 존재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며 울분이 가득 쌓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자존감에 심각한 타격을 주어 바른 인격 형성을 방해한다.

상처로 말미암은 족쇄

사람은 나이를 그냥 먹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성장을 하고 안 좋은 모습을 고쳐 나간다. 그런데 이를 치유라고 말하기는 조금 그렇다. 이전보다 대처하는 능력이 오르고 초연해진다 한들, 상처가 없는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다. 완전히 치유된 상태라면 어느 상황에서도 자유롭다. 또 무엇을 떠올려도 평온을 유지한다. 미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을 때라야 상처가 치유된 것이다.

세상에는 진심 어린 위로가 필요하다. 아픔을 공감하고 보듬어줄 위로 말이다. 그런데 기대할 수 있을까? 세상은 점점 더 삭막해지고 위선과 가식이 기본 옵션이 되었다. 위로는커녕 상처 주는 말을 내뱉고, 아파하는 사람을 더욱 고립된 장소로 내몬다. 세상에서 치유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가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상처는 장차 큰 비극을 낳는다.

상처는 마치 노예 발목에 채운 족쇄 같다. 자유롭지 못하게 억압하기 때문이다. 족쇄의 형태는 그가 받은 상처와 관련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사람의 본래 성향에 따라 차이를 드러낸다.

자존감 저하.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 밖의 여러 요인으로 인해 바른 자아상을 갖지 못하게 된 경우다. 인간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고귀한 존재임에도, 마귀는 거짓 속삭임으로 우리를 꾀며 죄를 짓게 만들고 자신을 경멸하게 만든다.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은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가치를 깎아내리기에 자주 수치심을 느끼고 또 남들과 비교하면서 낙담에 빠지거나 패배 의식에 사로잡힌다. 더 심해지면 살고 싶은 의욕을 잃고 자살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정서불안. 위로보다 공격이 자주 오는 현 세태에서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반응이다. 상처로 인한 아픔은 온전히 자기 몫으로, 누가 대신 감당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아픔을 경험했고 또 아플 수 있는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고 마음을 강하게 단련시킬 필요가 있다.

대인기피. 사람들을 두려운 존재로 여기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나지 않는 행동이다. 떠올리기 싫은 과거의 기억이 있는 것이며, 해결이 안 돼서 아파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은 꼭 나쁘게 여길 것은 아니지만 두려워한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이러한 묶임은 관계를 깨트리고 삶을 황폐하게 한다.

도피증. 도피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에서의 도망이며 무엇에 중독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게임, 드라마, 아이돌, 연예인, 운동, 쇼핑, 주식, 도박 등에 몰입하고 스트레스를 술로 풀려고 한다. 이는 자신만의 위안거리로써, 현실에서 얻지 못한 위로의 대체제이다.

환각·환청. 정확하게는 흉측한 것을 보거나 이상한 소리를 듣는 현상이다. 일반인들은 공감하지 못하기에 타인과의 괴리를 낳는 부분이며, 사람을 점점 외골수로 몰아가는 점에서 지독히 위험한 증세다. 대개 상처를 안고 있으면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다. 따라서 외롭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자기를 도울 존재를 갈망하기 마련인데, 악한 영들이 이 부분에서 아주 능통한 자들이다. 영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에 개입해 주는 것 같고 심리적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렇게 유착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져오는 것은 죄요 영원한 멸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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