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기독교강요

기독교강요(초판) 3강 율법

이원범 2021. 7. 30. 22:56

앞서 타락에 관해서 이야기했는데 이어질 내용도 그리 즐겁지 못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어두컴컴한 빗길을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넘어질지 모릅니다. 잘 나가더라도 죽음과 파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무 암울한 현실을 이야기해서 싫어하는 분이 있을 줄 압니다. 절망이란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으로서 회의감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소나마 우리가 죄에 대해 인지하도록 의도하셨습니다. 양심이라고 부르지요. 이것은 우리 마음에 새겨진 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율법입니다. 의에 관한 기준이자 가르침으로서, 이것을 지키므로 의롭다 인정받습니다. 양심과 율법은 같은 기능을 합니다. 죄에 눈을 뜨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만약 몸에 이상이 생겼는데 아무 증상이 없다면 좋을까요? 이상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쉬어줘야 하는데 몸을 움직이고, 치료받아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게 되니까요. 율법은 내 안에 더러운 것이 들어있음을 밝혀주는 도구입니다.

율법이 항상 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의 의를 내세우는 부류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율법은 그것을 지켜 행할 때 합당한 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수행할 사람은 없습니다. 전부 지키고 싶어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자각해야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주신 거룩한 법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수시로 어기며 형편없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깨닫는 것이 우리는 절망스러운 존재요 망할 자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깨달으라고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속의 불의와 더러움을 상기하는 일은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은데, 성도들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교회 흐름이 칭의 교리에 치중한 나머지 죄에 대한 부분이 빈약합니다. 성도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죄를 터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라고 해야 할지 작년에 참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이들보다 정직해야 하고 선해야 합니다. 겸손하고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잘못하여 욕을 먹는다면 하나님께 불명예가 됨을 명심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