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가이드/성경 강좌

스바냐 서론

이원범 2022. 2. 11. 14:35

스바냐는 유다 왕 요시야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므낫세 이후로 유다는 북왕국의 전철을 밟아 쇠퇴기를 맞이합니다. 비유하면 불치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반대로 백성들은 나라가 망하지 않으리란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자신들이 망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방 나라와 백성은 심판과 저주를 받더라도 자신들은 마지막 날에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유다 백성이 의인이라는 가정하에 옳은 생각입니다. 율법이 거듭 선포하고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의인이 아니므로 복을 받는 쪽이 아니라 반대에 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인의 숫자가 너무 적었습니다. 유다의 멸망은 시간을 아무리 늦춰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짓는 죄가 얼마나 중한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부끄러운 것으로, 사람들이 알면 곤란한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수만 배는 더 무겁습니다. 평상시 우리가 죄에 대해 인지하는 양은 실제에 비해 만분의 일도 안 됩니다. 태산만큼 죄를 지으면 겨우 바위만큼 지었다고 여기는 수준입니다. 성령님께서 조명하시지 않으면 죄인인지도 모릅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인데 의인인 줄 착각하고,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지으면 지은 만큼 몸이 더럽혀지고 죄성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스바냐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는 정말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죄에 대해 무뎌져 있음은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심판이 두렵게 들리지 않습니다. 노아는 홍수로 지면을 쓸어버리겠다고 하신 무서운 경고를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그 경고를 들은 사람은 노아의 식구 외에는 없었습니다. 스바냐의 메시지에도 대홍수 심판의 엄중함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유다를 넘어서 땅의 모든 거민에게로 향해 있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요시야 시대의 기록에서는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시행하였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왕이 종교개혁을 해야 했다는 것은 백성들이 여전히 우상숭배와 죄악에 젖어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요시야가 나서기 전에는 무엇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요시야의 행적에 대해서 논할 때 성과가 무엇인지, 왜 전환점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는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요시야에 대해 과대평가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선지자들의 회개 선포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중에 말씀을 듣고 통렬히 회개한 백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재앙의 날 모든 것을 잃고 고통과 치욕 속에서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든 간에 회개한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회개한 사람은 소수였고, 나머지는 완강하게 회개를 거부했습니다.

회개는 정말 중요하고 값진 일인데 소홀히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로 회개에 힘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난이 닥치면 교만이 깨치고 상한 심령이 됩니다. 그만큼 준비가 되어 회개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회개하지 않으니 이런 수단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해로운 것이 아닌 복의 다른 모습입니다. 그것을 기쁘게는 아니라도 긍정적으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할 줄로 압니다.


  • 강병도 편저, 「호크마 주석」, 기독지혜사
  • 노우호, 「읽는 것을 깨닫느뇨?」, 에스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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