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중심 도시입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중 이곳을 들렀습니다. 그리고 3차 때 다시 방문하여 회당에서 3개월, 두란노 서원에서 약 2년을 가르쳤습니다. 아마 이곳의 지리적 요건이 선교 전략에 잘 들어맞는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정말로 지역 너머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주님께서 직접 전하시는 말씀이 있기도 합니다.
에베소서는 '서신 중의 여왕'이라고 하며 '가장 영적인 저술'이라는 평가를 받는 서신입니다. 서두에 나오는 예정에 관한 진술은 놀라운 비밀일 뿐 아니라 우리로 하나님의 귀한 자녀라는 자긍심을 일깨워 줍니다. 깊은 영성의 소유자이며 삼층천에 올라갔던 바울이기에 깨달은 비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바울은 편지를 쓸 때 로마에 있는 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종종 방문자들에게 교회의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 서신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다고 하지만 아울러 모든 교회 공동체에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읽어보면 우리와 같은 이방인에게 맞춘 듯한 인상을 줍니다. 에베소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이방인도 많았습니다. 어느 곳이든 여러 출신이 모이면 갈등이 생기는데, 교회에도 그런 분위기가 없지 않았습니다. 당시 노년에 이른 바울은 숨겨진 비밀과 진정 교회가 무엇인지 모두에게 가르치길 원했습니다.
과거에는 출신이 중요했습니다. 언약이 혈통적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그런 구분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영적 관점에서 본다면 더 확실히 구별이 없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택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똑같이 믿음을 선물로 받고 귀한 자리에 초대되었습니다. 먼저 초대받아서 1등 시민, 나중에 왔으니 2등 시민이라 차등을 둘 수 없습니다. 또 부자든 가난하든, 나이가 많든 어리든 동일하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무엇을 핑계로 차별이나 따돌림이 있어선 안 됩니다.
4장부터는 화평을 이루기 위한 실제적인 조언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한 몸인 교회를 사랑하고 서로 섬겨야 함을 가르칩니다. 믿기 전의 옛 모습과 욕망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로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닮도록 노력하며, 선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라고 가르칩니다. 더불어 더러운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고하였습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강조하였던 데에 반해 여기서는 율법이 강조되었습니다. 믿음이냐 율법이냐 헷갈릴 수 있는데,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신 뜻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룩은 성령에 충만하여 죄악과 싸워 이겨야 비로소 취할 수 있습니다. 그냥 싸워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성령의 전신 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나약한 마음을 가진다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아닙니다. 필사의 각오로 전쟁에 나서야 합니다. 패배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약하거나 지면 잡아먹힐 뿐입니다. 요즘 코로나 블루라고 해서 우울증, 가정불화 등 각종 문제가 있는 줄로 압니다. 약해지면 안 됩니다. 마귀에게 틈을 내어주지 맙시다. 시험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추수 때까지 우리는 모두 알곡으로 남아있어야 할 것입니다.
- 강병도 편저, 「호크마 주석」, 기독지혜사
- 하용조 편찬, 「비전성경사전」, 두란노
- 한양훈, 「에베소서 강설」, 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