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호르 주석

마태복음 24

이원범 2024. 3. 2. 18:06

24:1~25:46 성전 파괴와 세상의 종말에 관한 이 강화는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마지막 교훈에 해당한다. 종말론적 심판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묵시적 강화'로 불리며, 배경이 되는 장소의 이름을 붙여 '감람산 강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강화에서 의도된 목적은 종말의 날에 대비해서 때가 늦지 않도록 회개하라는 데 있다. 나열된 전조를 가지고 시기가 언제쯤 될지 예측하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 아니며 하기도 불가능하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몇 월 며칠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하는 말은 전부 거짓이므로 거기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24:2 이 예언은 기원후 70년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벌하면서 성취되었다.

24:4~14 단순히 종말이 가까운 시기의 일이 아니다. 이 징조들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다시 오시기까지 전 기간을 특징짓는다. 심히 두렵고 혼란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성도라면 회개해서 더욱 순결한 영혼으로 변화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평온함 가운데 진전이 없는 것보다 풀무 속에서 정금으로 단련되기를 원하신다(잠 17:3).

24:14 the end will come. 종말은 구원하기로 택하신 자들이 빠짐없이 천국에 이르는 때가 될 것이다. 누가 택자인지, 아닌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에 주신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성도가 각자 맡은 바에 충실하면 언젠가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질 것이다.

24:15~21 수십 년 후 예루살렘의 무너짐을 예고하는 듯하며, 한편으로는 세상 끝날에 있을 큰 환난을 묘사하는 것 같다. 역사의 흐름을 통해 알게 되는 사실은 종말이 생각보다 느리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만 하더라도 종말은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의심한다거나 경각심을 늦추는 일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언제 어느 때 오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42~44, 50; 살전 5:1~3; 계 3:3).

24:15 abomination of desolation. 단 9:27, 11:31에서 인용하신 표현이며,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가증스러운 것을 가리킨다. 유대인이라면 이것이 기원전 168년 성전에서 벌어진 신성모독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이해했을 것이다. let the reader understand. 다니엘서에 예언된 일이 그때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가 되면 다시 일어날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성전 모독은 기원후 70년 유대 독립전쟁에서 로마 군인에 의해 재현되었다.

24:16 flee to the mountains. 그때 말씀을 기억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한 사람들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24:22 those days. 환난이 왔을 때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미혹에서 붙들어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며 때가 지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다.

24:24 if possible. 선택된 자라도 대적자들의 더러운 손이 미칠 수 있다. 미혹에 끌려 잘못된 정보를 주입 당하면 죄인의 길에 서서 귀한 세월을 낭비할 것이다. 악의 원흉인 대적자에게 복종한 죄는 결코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대역죄는 능지처참당해도 할 말이 없는 중죄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죄에 대해 철저히 회개하고 뉘우쳐서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녀가 되어야 한다.

24:27 as the lightning. 거짓 그리스도를 구별할 결정적 단서로서 아무라도 흉내낼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다. 이 같은 일을 동반하지 않고 내가 재림 예수라고 주장한다면 스스로 가짜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24:28 Wherever the corpse is. 여기서 '시체'는 거짓 가르침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 시체는 그저 썩은 고기를 찾는 독수리에게 환영받을 뿐, 산 자에게는 외면당한다.

24:29~31 인자의 오심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하늘을 가득 채운 주님의 신적 위엄 앞에 감히 얼굴을 드는 존재는 있을 수 없다. 구름을 타고 천사들과 함께 오신 그리스도, 심히 겁에 질려 크게 진동하는 흑암의 권세와 대적자들, 나팔 소리에 이끌려 사방에서 모여드는 백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24:30 sign. 왕의 행차를 알리는 천사의 나팔 소리(사 18:3; 렘 4:21). mourn. 왜 회개하지 않았던가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시점이다. 그동안 외면했던 말이 그때는 그들을 정죄하는 검이 되어 폐부를 찌를 것이다.

24:34 this generation. 당시 말씀을 들었던 청중의 세대를 가리키는 표현일 것이다. all these things. 인자의 오심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환난, 고난, 거짓 그리스도 및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을 가리킨다. 역사적 기록을 통해 이러한 징후가 실제 사실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4:36 no one knows. 그날이 오기 전까지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이 번복될 가능성은 조금도 기대할 수 없다. 만약 알아야 했다면 사도들에게 숨기실 이유가 없고, 숨기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보다 못한 후세의 누군가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날과 시'를 안다면 자신이 사도보다 월등한 수준의 권한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24:42 stay awake. 육신의 잠과 상관없는, 내면적 깨어있음을 촉구하는 명령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대상은 끊임없이 만족을 갈구하는 육체의 본성이다. 만약 육체를 제어하지 않고 그것에 끌려다니면, 우리의 영혼은 죄로 뒤덮여 힘을 잃고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약 1:15; 벧전 2:11). is coming. 재림에 대한 신학적 해설 참조.

24:45~51 주인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맡은 자들은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는 주인이 옆에 있을 때는 알 수 없는 그들의 본모습이다. 그들의 행동은 주인을 향한 충성심을 그대로 드러낸다.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상벌을 논하기 위해 우리가 맺은 열매를 확인하실 것이다(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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