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호르 주석

마가복음 14

이원범 2024. 3. 2. 18:56

14:1 the Passover. 애굽에 있을 때 어린양의 피로 죽음의 재앙을 모면한 사건을 기념하여 지키는 유대인의 주요 절기다. 예수님 시대에는 니산월(유대력 첫 달) 14일이었으며, 이날 양을 잡아서 구워 먹었다. 그리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만 먹어야 했다. '무교절'이라는 명칭이 무교병을 먹는 것에서 나왔다(출 12:15~20).

14:2 Not during the feast. 이 시기에는 도시가 순례객으로 붐비기 때문에 가급적 자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무리해서 진행하다간 추종 세력이 들고일어나서 큰 소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정치에 관여하는 종교 지도자들로서는 안전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14:3 Simon the leper.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는 시점에서 그는 나병환자가 아니며 제자들 무리에 속한 형제였다. a woman. 요한복음에서는 나사로와 마르다의 여동생 마리아로 나온다(요 12:3). pure nard. 희귀한 소재를 넣어 만들기 때문에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는 물건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아깝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드릴 수 있어서 기뻐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제자들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요일 3:18).

14:4 제자들의 반응이 싸늘하다. 향유가 주님을 위해 쓰였음에도 말이다. 마치 큰 실수를 저지른 것처럼 지적하는 건 그들에게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여기서 드러난 점은 그들이 꽤 경직된 사고를 가진 데다 합리성을 추구하다 보니 주님을 진정으로 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4:5 given to the poor.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말씀하신 바 있는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선행을 장려하실 분이시다. 그러나 여기서 한 말이 진심인지, 가난한 자들을 위함인지 확실한 사실은 알 수 없다. 요한은 이렇게 항의한 자로 가룟 유다를 언급하고 그가 사리사욕을 꾀하는 자임을 밝힌다(요 12:4~6).

14:6 a beautiful thing. 제자의 눈에 어리석어 보인 그 행동이 주님께는 아름다워 보인 일이었다. 이런 상황은 우리 사이에서 곧잘 일어날 수 있다. 대개 상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사랑받고자 한다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하다가는 열심히 일해놓고 오히려 책망만 듣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마 7:22).

14:8 anointed my body beforehand for burial. 금방 부패하는 환경적 특성으로 인해 생겨난 장례 문화로 보인다. 여기서 은연중에 그의 죽으심이 암시되고 있다.

14:10, 11 전 사건에서 드러난 그의 본심이 여기에서 숨김없이 나오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성적 판단을 마귀에게 빼앗겨(요 13:2) 크게 후회할 짓을 저지르는 중이다. 마귀가 그 속에서 주도권을 잡고 움직이니 그로서는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다(눅 22:31).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에 대한 책임을 미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21). 엄연히 그의 죄이기 때문이다.

14:12 Unleavened Bread. 유월절 저녁부터 시작하여 7일간 이어지는 유대인의 기념 절기이다. 예수께서 떠나시기 전 마지막으로 나눌 자리였다.

14:17 with the twelve. 예수님과 자리를 같이하고 싶은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았겠지만 택하신 열둘에게 한정되었다.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 부르심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며, 앉게될 보좌의 영광도 다르다(마 19:28; 고전 15:41).

14:18~21 3년 반을 동행하며 하나의 목적을 이루고자 노력했는데 이렇게 배신자가 나왔다는 것은 정말 뼈아픈 충격이다. 비록 그 모든 일이 오래전부터 예정되었던 대로 흘러간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신다.

14:21 as it is written. 예수께서 고위 관료들에게 고난당하심은 자신을 지킬 힘이 없어서가 아니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의 뜻을 이루려 하심이다(10:45). 어린양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것을 위해서, 홀로 세상 죄를 짊어지시려 이 땅에 오셨다(요 1:29).

14:22 this is my body. 떼어주신 빵이 문자 그대로 그의 몸이라고 해석할 근거는 없다. 빵은 우리가 먹는 그 빵일 뿐이다. 다만 영적인 의미로서,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아낌없이 내어주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실제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자기를 희생하셨고 값없이 영생을 얻게 해 주셨다.

14:24 my blood of the covenant.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 죄로 말미암은 대속적 죽음을 의미하면서 또한 새 언약을 확립시킬 증표의 역할을 한다. 결코 깨지거나 흐려지지 않을 거라는 강한 의지적 표현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창 15:17).

14:25 슬픔으로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님께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모르실 리 없지만 그렇다고 정해진 것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래도 언젠가 만날 수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신다. 실제로 만나는 것은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것과 느낌적으로 많이 다를 것이다. 부디 감격스러운 재회가 되도록 현재를 살아야 하겠다.

14:26 sung a hymn. 유월절 예식에 따라서 전통적으로 식사를 마치고 애굽 할렐시(시 115~118편)를 불렀을 것이다.

14:27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예고였으리라 싶은데 그날 밤 제자들은 뿔뿔이 훑어졌고 베드로마저 예수님을 부인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지 못하면 이렇게 넘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약함을 아시는 주님은 이 일을 이해하시지만 잘못은 잘못이다.

14:28 to Galilee. 부활의 선언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날 이후 제자들은 주님보다 뒤늦게 갈릴리로 갔다(16:7).

14:30 before the rooster crows twice.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마치 과거에 있었던 일처럼 이야기하신다. 육체로 인해 시간에 구애받으셨으나 본래 시간을 초월해 계시는 분이요 시간이 존재하게 하신 이이다.

14:33 troubled. 드물지만 예수님께서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느끼고 감정을 표현하신다. 이날은 주님께서 잡히시고 불법 재판에 넘겨지며 침 뱉음을 받고 조롱과 멸시를 당하셔야 했다. 흠이 없고 존귀하신 분이 인류의 죄로 인해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셨다.

14:36 cup. 10:38 해설 참조. 인간에게 지워지는 고난은 크기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본인이 지은 죄에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죄, 나라의 죄가 더해지는데 그마저 하나님께서 수위를 조절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잔에는 온 인류가 지은 죄가 들어있었다. 한 시대만이 아니라 전 역사를 통틀어 인류가 지은 죄였다. 개미가 쟁기를 끄는 소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고난을 실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not what I will, but what you will. 처음부터 희생을 각오하고 오셨지만 그리 쉽게 통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진노가 담긴 잔을 마주하고서 심한 충격과 절망감을 맛보신 것이다. 잠시 찰나라도 갈등을 느끼셨을 수 있지만 예수님은 본래의 마음을 되찾고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의탁하셨다. 멸망할 그의 백성을 위해 참혹스러운 십자가의 고난를 받아들이신 것이다.

14:38 Watch and pray. 대적 마귀는 우리를 망하게 만들려고 24시간 근무를 강행한다. 잠을 안 자거나 쉬지 못해도 그들은 육체가 아니기에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육체를 가진 우리로서는 심히 불리한 싸움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아무리 마귀라도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침범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강력한 대적 수단을 주셨는데 그것은 기도다(9:29). 기도로 죄를 용서받으며, 기도로 악한 귀신들과의 연결 고리를 끊을 수 있다.

14:43 crowd. 아무런 분별력도 갖추지 못하고 그저 윗사람의 말에 따르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14:45 he kissed him. 그의 사악한 의도를 알기에 매우 소름 끼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선은 악으로 위장하지 않으나 그 반대는 마귀와 그의 수족들에 의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14:49 be fulfilled. 예수님은 성경의 모든 약속을 성취하려고 오셨다. 고난받으시는 것이 아버지께서 정하신 뜻이기에 불합리한 폭력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끌려가셨다.

14:51 young man. 몇 학자들은 마가가 자기 모습을 간접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해석한다.

14:53~15:15 예수께서 유대 관료 및 로마인 지배자에게 공판을 받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단락에서 보이는 불의와 무질서는 아무 혐의가 없으신 분을 무력으로 잡아온 데서 시작된다. 미처 그들은 제대로 입을 맞춘 고소자들을 마련하지 못했고 허위로 혐의를 입증하는 것조차 실패하고 만다. 자신들의 죄를 찾았다면 밤이 세도록 끊임없이 나왔을 텐데 말이다.

14:56 false witness. 야심한 시각에 기습적으로 열린 불법 재판에 참 증인이 불려 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들은 권력자들에게 뒷돈을 받고 고용된 어리석은 자들일 것이다.

14:61 he remained silent.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려 예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신다. 그 모습은 마치 떨 깎는 자 앞에서 저항하지 않는 어린양과 같았다(사 53:7). Christ. 8:28 해설 참조.

14:62 Son of Man. 2:10 해설 참조.

14:63 tore his garments. 성경에서 유례를 찾아보면 감정적으로 심한 충격을 입거나 비통한 상황일 때 양손으로 옷을 쥐고 찢었다(창 37:29; 왕하 18:37, 19:1; 스 9:3; 렘 36:24; 욜 2:13).

14:64 blasphemy.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모욕하는 것을 신성모독이라고 한다. 인생에 오점을 남기지 않으신 주님께 그가 씌울 수 있는 유일한 올무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 진술에 관한 재고가 없었던 것은 뿌리 깊은 불신과 무지를 보여준다.

14:65 마귀의 편에 선 인간이 얼마나 악하고 흉측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은 예수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비슷한 짓을 하였을 것이다.

14:66~72 먼저 예고하셨던 그 일이 정확히 적중하였다. 베드로가 호언장담했던 말이 허세로 판명되고 만 것이다. 다만 그에게는 뉘우침이 있었고 뼈저리게 회개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주님께서 보셨을 때 책망하지 않으신 것이 그 증거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다. 실수는 당연히 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회개를 반드시 하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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