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설교

예수님의 피

이원범 2020. 2. 24. 10:24

히 10:19~20

어떤 행사나 잔치에 특별히 초청된다면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느 결혼하는 사람으로부터 결혼식 축가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어때요? “내 음악성을 인정받았구나”라며 기뻐 뛰겠죠.

또 한 가지 친구의 생일잔치에 초대받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여러분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좋아하는 여학생이나 남학생이 있는데 그 친구가 생일을 맞았어요. 그 아이는 생일잔치에 올 사람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감추었던 매력을 보일 기회다 싶었어요. 그러나 초청하는 사람의 수는 제한적이에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안에 들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지요. 초청받으면 아주 신날 것입니다.

보통 그런 자리에 자주 초대 받는 사람은 인기가 있는 사람, 어떤 자격이 있는 사람, 영향력이 있다거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지요. 평범한 사람은 특별한 자리에 초대받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집으로 초청받는 사람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며 전능자요, 창조주이신데 하나님께 초청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지요. 그 사람은 특별해요. 예수님의 피로 옷 입은 사람입니다.

백악관 앞에 서 있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는 길에서 담 너머 잔디밭 저편의 대통령 관저, 백악관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는 깨끗이 차려입었고 머리도 단정합니다. 구두는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걸음은 당당하고 활기찹니다. 그럴 수밖에 그는 대통령을 만나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대통령에게 진정하고 싶은 문제를 몇 가지 갖고 왔습니다.

첫째, 집 앞의 소화전 문제였습니다. 투박하고 찐한 빨간색... 빨간색을 약간 은은하게 바꿀 수는 없을까? 색깔이 너무 튀었습니다. 벚꽃처럼 분홍색이나 연한 보라색도 괜찮은데 왜 하필 빨간색이야. 그는 소화전의 색깔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둘째로,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쌌습니다. 딸이 다니는 대학에 전화해 등록금을 내리라고 말해 줄 수는 없을까? 대통령의 말이라면 효과가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에게 주려고 과자도 가져왔습니다. 대통령은 영부인과 강아지와 함께 과자를 나누어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손에는 과자봉지를 들고 얼굴에는 웃음을 머금은 채 정문에 서서 경비원에게 말합니다.

“대통령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경비원은 그에게 이름을 물어봅니다.

“제 이름은 크리스찬이라고 합니다.” 경비원은 손에 들고 있는 방문객 목록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명부에 그 이름은 없었습니다. 경비원은 예약하지 않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예약은 어떻게 하는 건데요?”라고 그는 물어보았습니다. 사무실 직원을 통해서 할 수 있다고 대답해줍니다.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라고 부탁을 해보지만,

“아무나 사용하는 번호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그 안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습니까?” 안에서 부르면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악관 사람은 나를 모르는데” 결국 대통령을 만나러 온 이 남자는 경비실 앞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담을 뛰어넘고 들어갔다면 그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그럼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이죠. 합당한 절차와 과정을 밟지 않고선 만남은 불가능합니다. 평범했던 이 남자는 대통령을 만나기엔 장벽이 너무 많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큰 장벽이 세 가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시간의 장벽입니다. 대통령은 매우 바쁩니다.

둘째로 신분의 장벽이 있습니다. 권력이나 영향력이 없는 사람은 만나주지 않아요.

또한 원칙의 장벽, 올바른 경로를 통해서만 대통령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비서실에 연락해서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지요. 이로 인해 그 남자는 대통령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과자를 주는 것이나 자녀가 다니는 대학의 등록금을 낮춰달라는 이야기도 할 수가 없습니다. 설령,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뛰어난 아이디어나 전략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대통령과 만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대통령 쪽에서 먼저 나서서 부른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마침 백악관 주위를 거닐던 대통령이 여러분을 보고 비서실장에게

“저기 과자 봉지를 들고 있는 저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으니 안으로 들어오라 하시오”라고 지시한다면 보이지 않는 모든 장벽은 무너집니다. 그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입장이 거부되었던 그 문으로 어깨를 펴고 당당히 들어설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온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는 이미 초청을 받았습니다.

본문 19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에게는 초청이 와있습니다. 거기엔 예수 그리스도라는 피 묻은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그 초청장을 가슴에 품고 천성에 이르면 그곳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을 초청하셨습니다. 대문이 열렸습니다. 한때, 막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므로, 하나님을 만나야 할 사람은 그리로 들어가면 됩니다. 거절당할까 봐 대문 앞에서 주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초청장이 와 있는데 거기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나아오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오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예복입니다. 그것을 입는 자는 하나님 앞에 나올 자격을 얻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써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의 전에 초대되었습니다.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로써 깨끗하여 집니다. 예수님의 흘리신 피는 나를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건 꿈도 못 꾸고 대문에서 쫓겨나고 정죄 당하고 전혀 소망이 없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 흘리신 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으심으로 휘장이 갈라졌습니다.

20절에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휘장은 찢어져 둘이 되고 그 사이로 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이르는 길, 휘장은 그의 육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휘장처럼 찢기면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에 찔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히므로 찢겼습니다. 그러나 처참하게 찢긴 그 몸을 통해 영광의 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초대 받은 잔치에 입을 예복입니다. 피를 입어야 잔치에 참여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 피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피가 없다면 내 입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난처합니다. 경비실 앞에서 쩔쩔매는 정도가 아닙니다. 대문에서 내쫒김을 당하고 영원히 수치스럽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통행증입니다. 천국 문 앞에서 통행증을 내밀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피가 어찌 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피를 믿은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고 생명까지 드릴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나 때문에 흘린 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나같이 못나고 더러운 죄 많은 사람을 위해 피 흘리셨냐고 울부짖는 것입니다. 흘리신 피에 비해 자신은 너무 무가치하다고 여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만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고 기도하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맥스 루케이도,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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